성인 ADHD 일기 2 - 콘서타18mg 복용기(1) -1~3일차
점점 변화하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약물치료 과정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초반엔 낯선 느낌이라.. 첫 일주일은 매일매일이란 짧은 텀으로 기록함. 아마 점차 익숙해지면 기록의 텀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1일차
플라시보 효과는 아닌지 계속 의심했다. 기분이 좋아서 일수도 있으니까?,,
- 핸드폰을 보지 않고 운동을 끝마칠 수 있었다.
(홈트레이닝할 때 한 동작하고 핸드폰 보기를 반복해서 엄청 오래 걸렸었음)
-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서 간식을 찾아먹지 않았다.
(어제까지 책상 위에 있는 비스킷을 끊임없이 입에 넣었었음)
- 간식을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물이든 커피든 뭐든 입에 넣을 것이 눈 앞에 없으면 자꾸 일어났었음)
- 크롭 탭을 바로바로 정리했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걸 바로바로 검색해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항상 탭이 꽉 차있고.. 컴퓨터 끌 때 어쩔 수 없이 한꺼번에 껐었음)
-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닥친 일을 해결하기 싫어서 약간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습관적으로 봤음. 평일엔 넷플릭스 보지 않기 규칙을 세웠는데 계속 지키지 못했었음..ㅠㅠ)
- 내 방에 있을 때 엄마가 밖에서 나를 불러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 시간이 천천히 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복용 후기에 '잡생각이 덜 들고, 들더라도 금방 날려버릴 수 있다' 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와 이게 말이 돼??? 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BUT 잠들기 전에 문제가 생김..
자려고 누웠는데 온갖 잡념이 물 밀려오듯 몰아쳤다. 생각의 폭풍우에 휩쓸린 느낌이었음.. 생각을 안해야 잘거 아니니..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어떻게 생각을 안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또 생각이 삼천포로 빠지고.. 수많은 생각으로 이어졌다ㅋㅋㅋㅋㅋ...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오늘 하룻동안 안했던 잡생각이 갑자기 드는 건가? 아니면 이게 평소 상태인건가? .. 얼른 아침이 돼서 약 먹고싶다ㅠ'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숙면을 취하지 못함...
2일차
- Visual Timer 어플로 20분 정도 맞추고 그 시간 내엔 자리에 꼭 앉아있으려고 몇 주 전부터 노력했는데, 오늘 5번 정도 타이머를 맞추었고 단 한번도 타이머 시간 내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가장 괴로워하는 자소서를 쓰는 중이었다!)
- 당연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긴 한다. 근데 궁금한 것을 검색하고 다시 하던 것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막 딴짓을 한참 하다가 '아 맞다!'하고 돌아오는게 아니라 내가 딴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느낌....
- 음악을 틀고 할 일을 할 수 있다! (공부 말고) 내가 느끼는 감각에 레이어가 생긴 기분? 틀어 놓은 음악이 단순히 BGM처럼 깔린다. 예전엔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들리는 음악의 비중이 똑같이 느껴져서 음악 때문에 방해가 자주 되었다.
- 역시나 크롬 탭이 5개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무작정 늘어놓지 않음 ㅠ
- 아침에 약간 현기증이 나서 운동을 살살 했는디.. 깊은 수면을 못가져서 그런것인지 약 때문인 것인지? 모르겠다.
- 넷플릭스 보고 싶다는 생각 안드는건 정말 어메이징하네 ,,
- 전날 힘들었던 것이 무색하게 숙면을 취함!
3일차
- 오늘은 놀기만 해서,, 집중할 일이 없었구 평상시와 특별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 운동을 하거나 움직일 때 갑자기 더워지면 순간 현기증이 났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인지 콘서타의 부작용인지 아님 걍 철분 부족인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 이틀동안 웹툰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챙겨보는 사람임..)
ADHD 환자는 도파민 분비량이 부족해서 부족한 도파민을 채우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찾고 쉽게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며칠간 넷플릭스와 웹툰을 찾지 않았다는 것. 이 두 가지가 내 할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 놀라운 변화다.
사실 나는 내가 자극적인 것에 취약하고 중독이 쉽게 되어 lose myself하게 되는 타입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아예 차단해버리려고 노력했다. 이성적으로도 건강하고 건전한 삶을 추구하지만, 자칫하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역설적이게도 '어쩔 수 없이' 유혹이라는 것에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한 예로, 내가 게임을 즐겨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떤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하루종일 게임 생각을 하고 끝을 보려고 했다ㅠㅠ... 대학교 때 핸드폰 게임에 빠져버렸는데 수업시간이든 언제든 게임만 손에 붙들고 있었다. 속으로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것만 다 깨고 바로 지워버린다ㅠㅠ' 라고 수없이 다짐함.. 안타깝게도 나의 레벨업보다 업뎃 속도가 더 빨라서.. 그 게임에서 벗어나는 데는 한참이 걸렸고 나의 수많은 밤을 희생했다..... 그래서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 있으면 절대 다운 받지 않고 친구들 폰으로만 함.... 그것이 나를 지키는 최선이었다.
그냥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신경 전달 물질이 남들보다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