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일기 1 - 정신과 초진 그리고 CAT검사

2020. 4. 9. 11:12ADHD 일기

 

SNS에서 ADHD 증상이라는 글이 떠돌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그 중에 나도 있었다.

충동행동 외에는 모든 말들이 나를 표현하는 말 같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거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거 아니었어?'

 

다들 집중 잘 못한다고, 산만하다고, 뭔가 하려고 핸드폰을 켰다가 왜 내가 핸드폰을 잡고 있는지 기억 안난다고 하잖아. 가스불에 불 올려놓고 까먹고 핸드폰 지갑 두고 집에서 나오는거 많이들 하잖아. 다 그런거 아니야?

이후에 궁금해서 ADHD관련된 컨텐츠 및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위 친구들에게도 증상 유무를 물어보았다. 나만큼 심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유투브에서 성인ADHD모임 채널(에이앱)을 구독하고 자세한 증상들을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고나서 결심했다. 진단을 받아보기로. 

 

에이앱에서 ADHD진단 가능 병원 리스트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검색해보니 원장님이 친절하다고 후기가 좋길래 그곳으로 예약.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됐다. 

 

'내가 ADHD가 아니면 어떡하지?

그냥 내가 의지 박약이고 노력이 부족해서 힘든거면 어떡하지?' 

노력을 안해서 그런 것 뿐이라고, 확인 사살을 당할까봐 너무 두려웠다. 혹자는 정신질환이 없다면 남들과 같다는 거니까 좋은거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내가 정상인데 매일매일 이 붕 떠있는 느낌을 받는거고 매일이 우왕좌왕하고 정신없는거라면.. 내가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라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았다. 

 

 

의사쌤과의 간단한 상담을 했다. 왜 왔는지, ADHD라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것이 불편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케든 되겠지 하고 미리 머릿 속에 정리를 안해갔더니 좀 횡설수설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괜찮고, 회사에서 몸을 움직이는 업무는 괜찮은데 페이퍼웍을 할 때 집중도 너무 안되고 가만히 앉아있는게 넘 힘들다고 말했고. 지금은 10분 이상 집중이 안돼서 보이는 스톱워치같은 걸 이용한다고 했다. 할 말은 많았는데 기억이 안나서 원통쓰..

그리고 사전검사지에서 꽤 우울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와서 왜 우울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말하다가 울어버렸담ㅠ..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청소년기는 기억이 잘 안나서.. 스무살 이후에 대학 가면서부터 인생이 꼬인 것 같고 지금도 무력감이 들고 늘 뒤쳐지는 것 같고 매일 아침이 오는게 너무 싫다고 했다. 

 

 

의사쌤은 아래와 같은 간이 체크리스트를 보여주며 체크해보라고 하셨다. 

 

유투브에서 퍼온 이미지

 

나의 경우에는 매우자주그렇다 3개, 자주그렇다2개, 약간혹은가끔그렇다 1개를 체크했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거 아니냐고 물어보자 의사선생님은 그냥 웃으셨다 ㅎ.. 

 

종합주의력검사(Comprehensive Attention Test, CAT)를 받기로 했다. 

검사는 다음 7가지가 있었고 총 5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단순선택(시각), 단순선택(청각), 억제지속, 간섭선택, 분할, 작업기억순방향, 작업기억역방향 검사.

 

 처음엔 너무 간단하고 다 맞추고 있는 것 같아서 'ADHD 안나오면 어뜨카지?'라고 생각했고.. 컴퓨터 옆에 무슨 설명브로셔랑 그림이 걸려있길래 '이건 일부러 주의력을 분산시키려고 갖다놓은건가?'라고 생각하다가 몇 개를 놓쳤다. 근데 청각 부분부터 소리가 넘 헷갈리기 보단.. 반사적으로 오답을 선택해버리기도 하고ㅠ 억제지속에선 와장창 틀려버렸다. 손이 내 맘대로 안움직여서 빡쳐서 욕하며 벽을 발로 차기도 했다.. (아주 살짝이요..) 간섭선택부터는 갑자기 졸음이 몰려들었고 작업기억에서는 끝부분가서 아무 생각이 안나서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도 그럭저럭 할만했다. 한시간 동안 게임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근데 의사쌤의 첫 마디가 '검사 많이 힘들었죠?' 라고 해서.. 음.. 지루하긴 한데 힘들정도인가?? 그건 아닌것같은데? 내가 ADHD 환자이고 싶어하는 가짜 환자인건가? 왜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 그냥 그랬는데.. 아님 내가 이미 힘든 일상에 익숙해져서 별문제 아니라고 느끼는건가? 별별 생각이 듦 ㅋㅋ 

 

그리고 결과가 바로 떴는데 7가지 중에서 5가지 검사에서 저하가 나왔다. 이정도면 ADHD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부 그래프에선 내 주의력이 10세의 평균 주의력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홀? 충격쓰. 

 

'이 정도로 주의력이 안좋은거면 일상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건가요?' 라고 물어봤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느끼기엔 어떻냐고 되물어보셨고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의사선생님은 '정신질환은 본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거예요' 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나를 수없이 검열하고 의심했던 걸 들킨 것 같아 찔렸다..

 

콘서타 18mg과 항우울제, 소화제를 처방받았다. 항우울제는 내 상태가 좀 중한 우울감?이 있어서 추가로 처방해주신 것. 콘서타 약효는 12시간 정도 지속되고 커피와 같이 늦게 먹으면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니 오전 9시 이전에 먹으라고 지시해주셨다. 

 

물 흐르듯 진료가 끝났다. 나는 성인ADHD환자다. 그동안 고민하고 궁예질했던게 이렇게 간단히 결론지어진다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를 하고, 대학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남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수학 공부를 정말 좋아했고, 언어나 외국어 지문을 읽는 것은 너무 힘들어했다. 모두 각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그냥 공부를 좋아해서 공부가 가능했던 것 같다. 솔직히 똑똑하다 생각함. 

논술은 싫어했다. 처음 입시 논술 수업을 들었을 때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울었다. 나도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칸막이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는 수학문제 외에는 같은 줄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셀프모의고사는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못알아듣는다. 청각에는 문제가 없는데 문장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말귀 못알아듣는 사람들 많으니까 나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지. 근데 TOEIC시험에서 LC보다 RC점수가 높은게 정말 특이한 것이란걸 깨달았을 때 내가 남들보다 더 못알아듣는게 맞구나, 알게 됐다. 그제서야 내가 통화를 싫어하는게 이해가 됐다. 청각 난독증이라는 것도 ADHD의 증상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처럼 집중을 하고, 오랫동안 앉아있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난 배의 노력을 가하고 있었다는 것. 억울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 나 자신이 너무 대단했다. 

 

ADHD 진단을 받은 날은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스펙타클한 변화는 없겠지만 앞으로 좀 덜 산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가 됐다.

 

 

콘서타18mg